An interview for Piano Magazine I November 2015(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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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크푸르트 방송교향악단(Hr-sinfonieorchester)과의 무대를 앞두고,

 

콘서트 피아니스트의 지각변동

김혜진은 흔들림 없는 견고한 타건을 바탕으로 작품마다 자신의 음악적 아이디어를 신선하게 대입시키는 모습을 보였다. 베토벤모차르트 같은 작품에서는 정교하고 세심한 건축적 해석을, 라벨쇼팽과 같은 무대에서는 우아함과 서정성으로, 라흐마니노프프로코피에프와 같은 작품에서는 굵은 패시지와 탁월한 애수 깃든 선율로 청중을 매혹시킨다. 각기 다른 성향의 레퍼토리임에도 김혜진의 연주가 돋보이는 이유는 그의 음악적 중심이자 밑바탕에 어떠한 레퍼토리도 안전하게 자리할 있을 만한 견고함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적면서 뜨거운, 러시아음악이 좋다

첫 음반을 라흐마니노프 협주곡으로 선정했던 김혜진은 그간 국내외의 무대에서 러시아 작품에 대한 애정을 다분히 드러냈다. 올 해 상반기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 오케스트라와의 협연무대에서 실황으로는 좀처럼 접하기 힘든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제4번’을 협연함으로서 라흐마니노프의 협주곡 전곡(Op.1 in f#·Op.18 in c·Op.30 in d·Op.40 in g)을 마스터하였으며, 2013년 바이올리니스트 사라 장이 초청된 바 있는 미국 나파 밸리에서 여름에 개최되는 델 솔 페스티벌(Festival del Sole) 초청 무대에서도 라흐마니노프의 ‘악흥의 순간(Moment Musicaux)’과 함께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국내 무대에서도 여러 차례 러시안 작품을 선보였는데, 2014 서울 국제음악제 라이징스타 초청 독주회에서는 스카를라티․베토벤과 함께 프로코피에프의 ‘피아노 소나타 제4번 c단조, Op.29’를 선보여 긴장감 넘치는 프로코피에프 특유의 러시안 감성을 재현했으며, 2010년에는 대전시향과 라흐마니노프의 ‘협주곡 제2번’을 연주해 대담하면서도 폭넓은 해석과 함께 러시안 향수를 자극한 바 있다.

“러시아 음악에서 나타나는 특유의 낭만과 열정은 그 누구에게도 매력적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감정을 음악 안으로 이입시키는 데 있어서 가장 안락하게 느껴지는 본능적인 레퍼토리이기도 하고, 실제로 나는 러시아음악 열성팬이기도 하다. 내가 가장 애착을 갖고 있는 러시안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는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인데, 그의 음악 안에는 고독(Solitude)․사랑(Love)․향수(Nostalgia)․우울함(Melancholy)․격렬함(Violence)․깊이(Depth)․따뜻함(Warmth) 등 비극과 희극을 오가는 인간적인 감정들을 고유의 로맨틱한 화성들로 그려낸다. 흔히들 전형적인 러시안 스타일(쇼스타코비치․프로코피에프․무소르그스키 등)에 비해 다소 낭만적이라고 비평하는 이들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그의 음악이 굉장히 인간적(Warmth)이고 뜨거워서(Passionate)좋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첫 음반을 라흐마니노프의 협주곡들로 구성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은 정말 감사한 일이다.”

 

흔들림 없는 견고한 타건에 덧입히는 우아한 선율

김혜진이 프랑크푸르트 방송 교향악단과 선보이는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 역시 그가 자신 있게 선보이는 레퍼토리. 김혜진은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에 대해 “피아노 작품 외에도 차이코프스키는 현악작품․교향곡․발레음악 등 다양한 형식으로 자신의 정신세계를 표현했는데 그 중 그의 교향곡들, 특히나 후기 작품인 교향곡 4․5․6번은 차이코프스키의 내면(인간으로서의)이 가장 잘 드러나는 작품들이라고 생각한다”는 말과 함께 “아름답게 포장된 화음 안에,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무언가에 대한 그의 갈망을 토로하는 듯 표현되는 멜로디가 모순적이면서도 깊은 호소력으로 마음을 사로잡는다”고 덧붙였다. 그간의 협연무대에서 김혜진은 흔들림 없는 정교하고 견고한 타건을 바탕으로 작품마다 자신의 음악적 아이디어를 신선하게 대입시키는 모습을 보였다. 여유로우면서도 겸손한 자세로 무대에 오르는 그는 베토벤․모차르트 같은 작품에서는 정교하고 세심한 건축적 해석을, 라벨․쇼팽과 같은 무대에서는 우아함과 서정성으로, 라흐마니노프․프로코피에프와 같은 작품에서는 선 굵은 패시지와 탁월한 애수 깃든 선율로 청중을 매혹시킨다. 각기 다른 성향의 레퍼토리임에도 김혜진의 연주가 돋보이는 이유는 그의 음악적 중심이자 밑바탕에 그 어떠한 레퍼토리도 안전하게 자리할 수 있을 만한 견고함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피아노의 전 음역에 걸쳐 폭넓은 스케일과 다이내믹을 자랑하는 ‘피아노 협주곡 1번’에 대한 그의 대답이 흥미롭다.

“피아노의 고음역대 부분은 우리가 음악을 들을 때나 또 연주하게 될 때 가장 귀에 집중되는 음역대이고, 그렇기에 많은 공을 들이게 되는 음들이다. 하지만 저음역대의 뒷받침이 있어야만 그 빛과 색깔을 더욱 발할 수 있고, 또한 중간 음역대를 통해야만 완전한 색깔을 입게 된다고 생각한다. 와인 잔에 아무리 좋은 와인 잔이라 할지라도 그 안에 어떤 와인이 담겨있느냐에 따라 가치가 결정되듯이, 중간음역대가 그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피아노라는 악기의 특성상 화성의 밸런스가 소리의 질/색깔(Quality)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된다. 피아노만이 가질 수 있는 이런 특성을 서주부터 강렬하게 내리치는 이유로 이 곡의 매력은 충분하다.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 또한 러시아 피아노 음악을 대표하는 작품 중 하나이다. 화려하고 기교적인 부분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작품이지만, 그 뒤에 가려지기 쉬운 특유의 절제된 감성에서 우러나오는 서정적 멜로디야 말로 이 작품을 더욱 빛나게 하는 진정한 핵심이다. 웅장한 스케일 안에 살아있는 섬세함을 통하여 러시안 정서가 잘 드러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접한 단편의 몇몇 작품들로 러시아 음악을 정의내릴 수는 없지만 투박한 듯 유연하고, 냉정한 듯 뜨거운 러시아 음악만이 줄 수 있는 감동은 유일무이하지 않을까 싶다.”

 

김혜진의 행보에 주목하는 이유

통상적으로 피아노를 ‘남자의 악기’라 칭하지만, 실제 이 악기를 다루는 비중은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다. 그럼에도 소위 ‘스타성’을 겸비한 연주자는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한정되어 있기도 한 영역이다. 세대의 전환이 이뤄지고 현재 한국에서 주목받는 여류 피아니스트는 김규연․손열음․안수정․이효주․임효선 등의 1980년대 태생 연주자에 이어 최근 부조니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한 문지영 등으로 대표된다. 최근 한국인 피아니스트로서는 최초로 세계적인 클래식 매니지먼트사인 <IMG Artist>와 계약하며 이 스타대열에 은은하게 스며들고 있는 김혜진에게 기대하는 바가 크다. 김혜진은 “비슷한 세대에 위치한 음악인들의 활동반경이 점점 국내외로 활발해지고 있는 시기인 것 같다. 그만큼 우리나라의 문화적 수준이 발전하고 있음을 많이 느끼면서, 동시에 동료와 선후배들의 활약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는 말과 함께 “한 사람, 사람마다 각자 고유의 색깔이 있고 또 추구하는 음악도 다양하기에 부러움을 느끼기보다는 서로의 음악적 색깔을 존중하며 우리나라 클래식 음악계를 위해 함께 발전해 나가고 싶다”고 말하며 자신의 생각을 정리했다. 김혜진은 “발렌티나 리시차․예브게니 키신 등 스타 연주자들과 함께 <IMG Artist>를 통하여 활동할 수 있게 되어 기쁜 만큼 책임감도 크다. 지금은 하나하나 준비해나가는 과정이며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활동이 시작된다. 20대가 나만의 음악세계를 확고해지기 위해 연마해온 시간이었다면, <IMG Artist>와 함께 앞으로 다가오는 시간을 통해 나만의 색깔을 더욱 입히며 진정성 있는 음악으로 청중과 더욱 가까워지기를 바란다. 사람으로서 또 음악적으로서 한 층 더 성숙하고 내가 추구하는 음악을 더욱 더 펼쳐나갈 수 있도록 정진하고 싶다”고 다짐한다. 김혜진은 2015년 2월 국내에서의 데뷔 리사이틀(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쇼팽과 슈베르트의 작품들을 선보이며 초기 낭만작품 해석에 진지하게 다가서는 모습을 보였다. 그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예술세계에 대해 입을 열었다.

“나는 천부적으로 타고났다거나 천재성을 띤 피아니스트가 아니다. 단지 음악을 좋아해 피아니스트로서의 길을 자연스럽게 마주하게 되었고, 더욱 좋아하면서 한 걸음 한 걸음 꾸준히 이 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뿐이다. 조금 더딜 수도 있을 테고, 강렬한 반짝임이 아닐지라도 꾸준히 성장해나가는 음악인의 모습으로 오래도록 기억되었으면 한다. 나만을 위한 음악이 아닌, 내가 음악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듣는 이의 마음 속 어딘가를 어루만질 수 있는 음악을 하는 것, 그런 연주자이기를 바란다.”

김혜진이 약 10년간 지속된 독일에서 음악 여정을 정리하고 미국으로 이주해 또 한 번의 새로운 도약을 예고하고 있다. 지난시간 독일에서의 학업, 그리고 현재의 모습에 대해 그가 답했다.

“20대의 청춘을 온전히 쏟아 부은 독일에서의 10년이라는 세월은 삶과 음악에 있어 떼어 놓을 수 없는 시간들이었다. 독일에서의 배움을 통하여 음악의 본질을 깨달아갔고, 자아를 발견해나감으로서 내 음악에 대한 확신과 색깔이 더욱 확고해 질 수 있었다. 미운 정, 고운 정 다 스며들어있는 베를린에서 마련한 10년간의 보금자리를 떠나는 것에 대한 아쉬움과 동시에, 독일과는 너무나도 상반된 미국서부 캘리포니아라는 새로운 환경이 두렵기도 하다. 하지만 삶 속에서의 다양한 경험이 음악을 더욱 무르익게 하는 것이 분명하기에 결정의 순간에 망설이지 않고 결심할 수 있었다. 새롭게 주어진 이곳에서의 시간 동안 새로운 경험과 도전들이 음악 안에서 더욱 풍요롭고 자유로운 표현력으로 승화되어지길 기대해본다.”

김은중 기자(월간 <피아노음악/Piano Music> <스트링앤보우/String&bow>)